이 글은 일부 독자에게 불편하거나 불안감을 줄 수 있습니다.
임산부, 어린이, 심신미약자 분들은 읽기를 자제해 주시길 권장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 장소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이 동네 뒷산 산책로에는 다른 곳에 없는 규칙이 있었다.
오래전에 누가 이곳에서 토막살해를 당했다고 한다.
당시 뉴스에서도 다루고 주민들도 무서워하고, 동네 분위기도 흉흉했다.
그때 다른 부위들은 다 찾았지만 발 두 개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곳은 뒷산임에도 심히 경사진 길이 한 군데 있을 뿐이고, 아파트 단지가 가까운 곳에 있는 산책로였지만 발만큼은 아무리 찾아도 헛수고였다.
이에 범인이 발을 들고 달아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범인이 잡히지도 않은 채 그대로 사라진 것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 뒤로 이 산책로를 지나가다가 두 개의 발이 뛰는 걸 봤다는 목격담들이 인터넷 괴담 게시판이나 학생들 입소문으로 퍼졌다.
다들 하나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그런 게 어딨냐고, 거짓말이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었다.
동현도 그랬다.
그 이야기가 그냥 재미대가리라곤 없는 헛소리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럼 그때는 '어떻게 발 두 개만 그렇게 뛰어다닐 수 있으시죠?'라고 물어봐야지! 내가 갔다 와본다."
그저 인터넷상에서 다른 유저들하고 괴담 이야기를 하다가 동현이 사는 동네의 뒷산 산책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왔었을 뿐이었다.
발이 돌아다니는 이유에 대해 마약하고 헛것을 봤다, 누가 가짜 발로 장난친 거다, 자기 몸이나 범인을 찾고 있는 거 아니냐 등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가 동현이 그딴 건 없다면서 인증을 하겠다고 큰 소리를 땅땅 치고 말았다.
동현은 나름 자기가 이성적이고 냉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괴담 게시판에 와서 사람들이 올리는 이야기에 반박을 하는 걸 즐겼다.
이에 동현처럼 하루종일 인터넷 게시판에서만 잘난 척하고 자기들이 제일 똑똑한 줄로 아는 잉여들은 그다지 기대감도 갖지 않으면서 동현에게 빈정거림과 조롱 섞인 반응만 보내왔다.
인증 없으면 뭐다?
응 쫄음
괴붕이 귀신하고 썸타러 감
기저귀 꼭 차고 가라
저 새끼 기절하는 거에 내 오른손을 걸지
귀신하고 얼빡셀카나 찍어와라 게이야
저 새끼 저러고 방구석에서 딸침 내가 봤음
같은 말들을.
평소에 괴담 게시판에서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정작 귀신, 음모론 이야기나 하고 노는 놈들이 뭐 그렇지.
동현은 자기도 이들과 똑같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한심해했다.
그렇게 방구석 휴지에 태어나서 짝도 못 찾고 죽어 썩은 오징어 냄새만 풍기는 허연 올챙이 떼 아비 되는 놈들의 빈정거림을 두고 동현은 자기 휴대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온 산책로 앞에는 안내 표지판이 새로 생겨있었다.
산이었던 곳을 다듬어 벽돌을 바닥에 깔았지만 아직도 경사지고 왼쪽에는 나무와 풀이 자라 있었다.
오른쪽에는 울타리가 둘러진 채 그 아래 담벼락이 아파트 단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도 원래 산이었던 탓에 완전히 다 깍지 못한 산책로 입구는 가팔라서 걷기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원래 진입로라는 걸 알리는 표지판 외에 뭔가 주의사항이 있었지만 동현은 그걸 인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만 찍고 산책로를 오르려고 했다.
"저기요."
"?"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나름 괜찮게 생긴 여자가 있었다.
여자 표정이 살짝 좋지는 않아 보였다.
"제가 여기 지나가야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파트 단지 뒷문까지만 같이 가줄 수 있으세요?"
아파트 단지 뒷문이라고 하는 곳은 여기를 걷다 보면 길 중간에 울타리 사이에 난 작은 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문까지는 가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산책로 중간 후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둘이 같이 다니면 귀신이 나올 리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있지도 않은 걸 왜 신경 쓰나.
동현은 귀신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가 바로 잊어버렸다.
그저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마르고 안경 끼고 머리는 아주 짧게 자르고 추리닝 차림이라 아무튼 여자가 말을 안 걸게 생긴 동현에게 이런 일은 계 탄 거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어... 느에... 네!"
그렇게 동현은 여자랑 같이 산책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자기가 하는 사이트에 여자랑 걸어봤다고 자랑할 생각이랑, 결혼식 날짜랑 아들, 딸, 손자손녀 이름까지 궁리하면서.
걷는 동안에 운동삼아 나온 것으로 보이는 아줌마나 아저씨만 4~5명 봤을 뿐 귀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들도 다 친구분이랑 운동하나 보네.'
동현은 기껏 여자랑 걷게 되었으면서도 뭔가 말을 걸어볼 용기가 없어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저 동현이 속도도 안 맞추고 너무 빨리 앞으로 가다가 여자가 "잠깐만요~" 하고 부르는 소리를 몇 번 듣곤 했다.
이게 다 동현이 살면서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사람하고 뭐라고 말을 해본 적이 엄마, 학창 시절 여자 선생님, 대학교 여조교뿐이어서 여자랑 어떻게 대화랑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탓이었다.
(그리고 야한 거를 자주 본 탓에 그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탓도 있었다...)
그렇게 동현은 귀신이 없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저 이제 다리도 아파졌으니 평소 편의점 갔다 올 때처럼 휙휙 걷지는 못하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여자랑 비슷한 속도로 걷게 되었다.
슥.
철벅.
뒤에 무슨 소리가 더 들린 것 같았지만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벌건 대낮에 그런 게 나올 리가 없다.
저 마른풀은 그냥 바람에 흔들린 거다.
그래야 했다.
어느덧 산책로 중간, 아파트 뒷문까지 왔다.
여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문을 통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고 동현만 혼자 남았다.
전화번호를 얻을 엄두는 결국 내지 못했지만 이건 넘어가기로 한다.
하필이면 지나가는 사람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괜히... 아니다.
더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게 다 어떤 새끼들이 그런 건지 몰라도 그 사건이랑 소문이 문제였다.
그래도 여길 온 이상 아파트 단지를 통해 돌아가는 건 고추 달고 자존심이 허락을 못한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피며 왔던 길의 반대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거나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이건 낙엽이나 풀이 내는 소리라고, 동네 사람 산보하는 거라고, 애써 뒤돌아보지 말고 신경을 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까먹긴 했지만 그 진입로에 있던 주의사항 적힌 표지판에 기재된 내용까지 떠올라서 오늘 집에 금방 못 갈 것 같았으니까.
동현은 아예 귀신을 보면 어떻게 발만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지 질문할 생각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몸 뒤를 개미가 간지럽히는 듯한 기분 나쁨과 불안이 감싸는 채로 동현은 한 걸음씩 옮겼다.
처벅처벅.
조용한 산책로는 그 사건이랑 소문만 아니라면 너무나 오붓하게 걷기 좋은 곳이었다.
매년 가을이면 빨갛게 낙엽이 지고 봄이면 몇 그루의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금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엄청 춥지는 않지만 나무가 앙상했다.
동현이 이 산책로가 봄이랑 가을일 때 모습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즈벅.
'?'
발소리인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혼자 왔을 경우 뭐 하랬지... 아니 그거 떠올리지 말고 무시해.'
지금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아직 하늘에 해가 중천이고, 나뭇가지랑 마른풀들이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후우,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춰 섰다.
뒤의 소리도 조용해졌다.
이건 착각일 수도 있다.
동현 특유의 '어떻게든 현실적인 쪽으로 생각하기'로 일단 진정했다.
그렇게 동현이 가만히 있자 뒤에도 조용했다.
'돌아볼까... 아니 뭘 돌아봐.'
아까 본 주의사항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이 악물고 앞만 보기로 했다.
절대 겁이 나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걷자...
즈벅.
저벅.
바람이 불지 않았는데도 동현의 등이랑 뒤통수가 냉동 창고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뭐냐고. 세상에 귀신은 없다니까.'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잠깐 멈춰 섰다.
그러자 똑같이 뒤의 그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고양이조차 지나가지 않다니...
동현은 괜히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래도 차마 뒤돌아서 아파트 뒷문으로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걷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동현이 걷자 그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처벅.
처벅.
'으이씨... 조금만 더 가자.'
이건 아마도 주인하고 같이 산책 나온 강아지가 자기 혼자 신나서 돌아다니는 거겠지.
'개라면 헥헥거리는 소리를 낼 텐데? 이건... 아니야, 무조건 개여야 해!'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더 속력을 냈다.
처벅처벅처벅.
발소리도 더 빨라졌다.
그것도 동현의 걷는 속도에 맞추는 것 같았다.
저벅저벅.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해 멈췄더니 동현을 놀리듯 뒤의 소리도 조용해졌다.
그것이 내는 소리는 어쩔 때는 동현의 바로 뒤까지 다가오다가 뒤로 물러나기도 하는 것을 반복했다.
이래도 네가 날 안 보냐는 듯이...
안 보냐는 듯이?
이번에는 그 소리가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씨발... 별 그지 같은 게 장난이나 치고 앉아있어.'
이미 인증이고 뭐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벅.
동현의 눈앞에 어느덧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좀 멀찌감치 있기는 했지만 뛰면 될 것 같았다.
평소 방구석에서 폰이나 컴퓨터로 게임 아니면 인터넷 게시판에 별 영양가 없는 글을 올리기나 하고 운동은 안 해줘서 체력이 좋지 못한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서 빨리 탈출하는 게 중요했다.
집에 가서 그냥 뻗어있고 싶었다.
'하나, 둘, 셋!'
동현은 자기 입에서 침이 새는 것도 모른 채 출구까지 달렸다.
그 모습은 야자를 째기 위해, 그리고 일진을 피해서 도망갈 때만큼이나 필사적이고 누가 봤다면 웃겨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릴 때였다.
도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내가 뛰니까 개도 같이 뛰나? 이제 다 왔는데... 조금만 볼까?'
동현은 뛰다 말고 저 발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져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드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미친 듯이 달리는 발소리는 쉴 새 없이 울렸고, 동현이 뒤돌아 본 곳에는...
트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발목까지만 있는 발 2개가 사람이 내기 힘든 속도로 동현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그리고 도망칠 새도 없이...
잠시 후 산보를 나온 주민들이 산책로 출구에서 기절해 있는 동현을 발견했고, 동현은 응급실로 실려가서 거기서 의식을 찾았다.
그 뒤로 인터넷에는 이 산책로를 지날 때 주의사항에 대한 글이 업로드되었다.
• OO산 OO OOOO 아파트 인근 산책로 주의사항
1. 최소 2명이 같이 다니세요.
2. 혼자 왔을 경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3. 혼자 왔을 경우, 산책로 중간 아파트 단지와 이어진 문으로 나가세요.
4. 혼자 산책로에서 뛰지 마세요.
·위 사항들을 어길 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관리 측에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