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정답방

토스 1월 7일 퀴즈 정답

미뫈 2024. 1. 7.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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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 작성자가 말을 좀 편하게 합니다.
이 점 감안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 포스트에 있는 퀴즈 정답은 당일에만 유효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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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설탕이 우리 나라 식문화 &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해방 후 1950년대
밀가루, 설탕, 면직물
삼백 산업이라고 불리며
당시 우리나라 경제 발달에
기초를 닦은 물품들이다.

1945년 해방 전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조직적 수탈
& 화폐를 마구 찍어내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로 조선의 경제는
피폐한 수준이었다.

이 때 정상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50년에 6·25 전쟁까지
일어나 물자 생산을 위한
기반시설까지 잃었다.

이때 미국 군인들이
나눠주는 미제 초콜릿부터
수백만 달러의 현금 등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문화적 영향도 같이 받게 된다.

설탕의 원료인 '원당'도
미국의 물자 원조 물품 중 하나였다.

이 때는 국내에 설탕을 만들
공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에 UN과 미국이
한국 재건 계획을 발표했고,
'제당 공장 설립안'이 이 중 하나였다.

(50년대에 수입했던 설탕의
가격이 300환이었는데
당시 소고기 한근이
150환이었으니 더 비쌌다.)


그리고 1953년 3월에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삼성물산'이
우리나라 역사 최초의
정제당 회사인 '제일제당'을
만들어 그 해 11월에
부산에서 설탕을 생산했다.


그리고 제일제당은 이 설탕을  
100환으로 정했고 이것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다음 해에는 생산 설비를
2배로 늘렸다고.


그러자 제일제당의 뒤를 이어서
많은 업체들이 설탕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 때 삼양제당, 동양제당,
대동제당 등의 회사가 등장한다.


설탕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부가적으로 제과 산업도
같이 발달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나가오카 제과의
경리직원으로 일했던 박병규
신덕발, 민후식, 한달성 등의
동료들과 함께 1945년에
나가오카 제과를 사들여
해태제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1950년대에
캐러멜을 주류 상품으로 밀게 된다.


1956년에는 이양구
풍국(토요쿠니)제과를
인수해 동양제과로 바꾸면서
제과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동양제과는 나중에
사명을 '오리온 제과'로 바꾸고
밀크 카라멜, 뻐터 카라멜
등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츄잉껌, 젤리, 웨하스,
양갱 등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다.


그리고 1953년에
외식사업가 마복림
고추장에 설탕을 섞은
양념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이게 크게 유행한다.

뿐만 아니라 '무교동 낚지볶음',
제육볶음 등의 1950년대에
탄생한 모든 매콤달콤한 음식에
설탕이 들어가게 된다.

많은 이들이 설탕을 활용해
돈을 벌었고, 다양한 분야와
접목되면서 우리 사회 문화를
본격적으로 발달시켰다.


아이고오 머리야 @3@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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